09 Dec, 2016 - 12 Feb, 2018
보이는곳 너머로
유현선
어느
것이 진짜 세상일까? 우리의 일상과 공간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단조롭고 새롭지 않으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앞으로 일상만큼이나 익숙해질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세계에 우리는 놓여있다. 아이들은 실제가 아닌 화면 속의 현실로 세상을 배워가고, 실제보다도
더 실제 같은 현실이 영화 속에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듯 작품 속에 마주하는 우리의 세상도 믿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어느 것이 진짜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톰과
제리는 작가와 동시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혹은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의 캐릭터이다. 톰은
크고 강한 힘을 가진 고양이로 치즈를 노리며 숨어드는 제리를 늘 쫒아 다닌다. 작고 약한 생쥐 제리는
늘 톰을 피해 치즈를 얻어낸다. 실제 매 회 스토리마다 많은 사람들이 제리의 편이 되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톰을 골탕 먹이고 치즈를 얻는 제리를 응원하곤 한다. 힘 앞에 지혜로움이 승리하는 것을 보며
안도와 위안을 얻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누가 강자인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제리가 작고 약하다고 해서 착한 것인가? 실제 매 회마다 당하고
고통 받는 쪽은 톰이며, 제리는 늘 익살스런 웃음으로 승리를 맞이한다.
보이는 것의 우위가 아닌 다른 힘의 논리와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나쁠
것 같았던 톰은 거대하고 힘이 있지만 어리석은 존재이며, 착하고 작고 약한 제리는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리석은 톰으로부터 얼마든지 얻어내는 진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있고, 그것은 순리대로 혹은 보이는 대로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어떤
순간이나 현상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면의 다름이 우리 세상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작품 속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도 의미심장한 미소로 톰 보다 우위에 있는 제리를 통해 작가는 숨어있는 세계와 힘을 직시하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우리에게 희망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처럼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사실은 그 이면에 다른
모습의 희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무언가 숨어 있던 길을 찾듯이 어떤 벽에
부딪쳤을 때 그 길의 끝에는 새로운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톰이 유리해 보였던 세상은 실제 그렇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고 막다른 곳에 다다른 제리 앞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길이 있었다는 것,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작품 속 다른 배경 안에서 톰과 제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현실 모습의 묘사에서 보듯이 작가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뛰어난 묘사력과 만져질 듯한 화면과 구성으로 작품의 현실감과 완성도를
만족시킨다. 또 상대적으로 ‘톰’과 ‘제리’라는 두 상징적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그려져서 이질적 느낌과
동시에 두 개의 세계가 합쳐진 듯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때때로 실제의 현실
세계는 흑백으로 두 캐릭터는 컬러감으로 무장한 채 매끈하게 그려져 시선을 끈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작품을 관찰해보면 무심한 듯 흑백 혹은 컬러로 채색된 현실의 장면이 정교한 붓놀림과 두터운 밀도감,
회화적 감수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부분에서 타고난 작가의 역량 내지 내공을 느낄 수 있는데, 톰과 제리의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도 그들이 딛고 있는 세상에는 보다 인간적인 체취와 향수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만들어 낸 매끈한 가상의 현실에는 없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아날로그적인 회화적 본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사이사이 공기층을 만들고 그 안에 여백의 장치를 숨겨 두었다. 여기서 생성된 독특한
재질감에 작가의 손길과 감성이 더해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작품에서 다채로운 색상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것은 작가의 ‘블랙’으로 즉 열리고 숨 쉬는 블랙을 들 수 있다. 작가와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 폭넓은 범주를 오가는 깊이 있는 색채의 블랙으로 모든 색이 갇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색을 품고 있는 그래서 다양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작가의 상징적 색채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 하는 바에 다양한 테크닉적인 요소와
회화적 감성을 더해 관객들에게 만족도 높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작가는
앞서 작품들에서 다양한 주제들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잘 담아내었다면, 차츰 톰과 제리의 연작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진짜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며 보이는 세상 너머의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고 있다. 또한 겹겹이 쌓아올려져 서서히 등장하는 입체적 이미지들은 앞으로 현재의 작품에서 또 다른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작가의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머물지 않고 그 세계를 벗어나 주위의 시공간과 호흡하고
변모해 나가는 것. 이것이 작가가 그저 잘 그리는 작가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가 담아낼 이야기와 표현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요소이자 힘이라 할 수 있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 이제 시간적, 공간적 제약과 싸우며 빠르게 만들어가는 작품의 변화 형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현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듯 세상의 빠른 변화에도 왜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빠른 속도의 세상
속에서도 깊이 있는 쉼표를 남기고 싶은 작가의 심상적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보이는 곳 너머의 힘의 세계, 그리고 관계의 뒤바뀜에서 오는 깨달음과 그로 인한 역설적 희망, 그것이 작가가 작품 속 사회적 풍자의 무거움과 상황적 위트의 가벼움 사이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더불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까?’ 라고 반문하는 작가의 의미 담긴 물음에서 오히려 믿고 싶어지는 마음 한 자락을 얻는 것 또한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될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1979 서울출생 2007 홍익대학교 졸업 20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 졸업 現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