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May, 2018 - 15 Jun, 2018
GALLERY ROYAL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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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과 순환 과정에서 발견되는 신비와 경이를 담은 장신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화장을 하거나 옷과 장신구 등으로 치장을 함으로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도출되는 인정과 존경, 호감 등을 기대하고 그로부터 기쁨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장신구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인간이 장신구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멀리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장신구는 동물의 뼈나 치아 또는 새의 깃털과 조개껍데기 등 생활 주변에서 쉽게 채집하여 별다른 가공을 거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에 몸에 걸치거나 부착하는 장신구들은 오늘날과 같은 장식과 치장을 위한 목적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세에는 종교인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거나 교회 내의 권위를 증명하는 반지를 끼기도 하였고, 세속의 왕들도 이와 비슷하게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물건 가운데 하나로서 반지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시기에는 주로 주술적, 종교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장신구를 제작하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학적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주소원은 금속을 이용하여 장신구를 만들 뿐 아니라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다. 그러나 주소원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금속을 이용한 작품들이며 다른 작업들은 결국 그 자체로서의 표현 가치를 드러내는 것과 함께 금속 작품들을 보다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주소원은 금속성 장신구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금속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으로서의 양감과 무게감을 벗어나서 재료의 물성을 살리면서도 형식면에 있어서 손작업에 의한 유기적 형태의 생명감과 선의 효과를 보여주는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제 면에서 주소원은 이제까지 일관되게 천착해왔던 생명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그것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주소원은 여성 작가로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모성을 바탕으로 한 주제를 작품에 투영한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관조해 온 작가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시선이 향하는 소재는 주로 씨앗, 열매, 꽃봉오리 등의 식물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생명의 모티브들이 주로 은선(銀線)으로 엮은 줄과 꽃봉오리나 알 등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은(銀)은 그 어원상의 두 가지 큰 특징으로서 흰색이라는 점과 빛을 반사하는 물체라는 점이 강조되며 금속 가운데 어느 것보다도 열과 전류를 잘 전달하고 화학적 반응의 촉매제로서 작용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은이라는 금속은 아름다움과 함께 소통 혹은 연결이라는 개념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상징성을 갖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은의 이러한 속성은 주소원이 생명의 문제를 풀어 나아가며 관람객들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은선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은선을 엮어서 만든 작품들은 은이라는 금속이 갖는 엷은 회색의 순수함과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광택, 그리고 그러한 은이라는 광물이 선형으로 만들어져 형성되는 조형의 공간에 머무는 공기의 색채와 빛의 신비한 느낌을 잘 전해주고 있다. 은이라는 재료의 상대적인 희귀성과 고가의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의 크기는 작지만 은선으로 짠 알집이나 포자와 같은 형태를 통해 확장되는 공간과 이러한 작품들이 사용자에 의해 착용되었을 때 신체와 인접한 공간을 함께 점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분위기,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들이 작품 속에 응축되게 된다.
이번에 출품된 주소원의 작품들은 높은 작업의 밀도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마치 실로 뜨개질 하듯이 은선을 엮어 만든 장신구들은 은이라는 금속이 주는 우아함과 품위, 그리고 순수한 느낌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작가가 하나하나 작품의 형성 단계에 담은 상념과 추억을 읽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 제작과정이 매우 예민하여 자칫하면 작품이 파손될 수도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점을 염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태를 생명의 잉태와 성장 과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하고 소중한 존재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은과 같은 금속 장신구는 착용하는 순간 일시적으로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용자의 체온이 작품에 전달되면서 인체와의 일체감을 이루게 되고 접촉 표면으로 체온이 전달됨과 동시에 잠재적 에너지의 흐름이 인체를 통해 작품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볼 때 주소원의 장신구 직품은 작품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체와의 조화와 비례를 고려하여 작품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 작품을 착용하는 사람이 그것을 마치 자신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일체화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장신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것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기능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담긴 미학적, 사회적 의미가 그것을 착용함으로써 보다 더 증폭되고 완성되는 장신구가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하는 과정은 마치 생명을 잉태하여 성장시키는 과정에 비유된다. 이번 전시에서 주소원이 생명의 탄생과 순환 과정에서 발견되는 신비와 경이를 은사를 이용한 장신구 작품으로 풀어낸 결과가 관객들과 성공적으로 소통되기를 기대해본다.
200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금속공예전공을 하여 2003년 동 대학원 공예과 금속공예전공을 수료하였다. 2005년 로체스터 공과대학 금속공예전공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미국 코넬대학 조소과에서 인디팬던트 스터디를, 2007년부터 2008년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서 작업했다. 2008년 미국 로체스터, 바쉬 롬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9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2번째 개인전을, 2010년 서울 갤러리로얄에서 3번째 개인전 이후 8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금속을 이용한 장신구를 넘어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