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Feb, 2018 - 24 Mar, 2018
INTERVIEW
_GALLERY ROYAL
2010년 2월 갤러리로얄에서 노준구 작가와의 전시(2인전) 이후 8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이번 전시는 노준구 작가의 첫 개인전이며, 로얄과의 두 번째 전시이기도 합니다. 당시 전시에서는 노준구 작업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있었다면, 최근작에서는 서사적인 묘사가 보여지는데요, 그간 작업 안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돌이켜보니 예전에는 어떤 상황을 묘사하거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인 과장을 이용해본다거나 어떤 것을 비틀어서 표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리지만 약간은 극화된 장치를 넣어 어떤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한다거나 때로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하는 인물들, 잘려져 있고 특정 부분만 그려진 공간의 묘사 등을 통해서 이야기도 전달하고 화면의 재미도 추구하려고 했어요. 로얄에서 첫 번째 전시를 할 때 즈음 저는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메인으로 일을 시작했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의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했었어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도 어디까지나 그림그리는 것이 좋아서 시작하게 된 일이었고 누군가의 필요에 의한 그림이 아닌 내가 좋아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조금이라도 그려야겠다는 욕구가 있었어요. 클라이언트 일과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2013년 부터 참여하게 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룹 ‘아이구’를 통해 틈틈이 개인적인 욕망을 표출해 내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 즈음에 제 목소리에 약간의 새로운 소리를 입혀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연필보다는 붓으로 화면을 채워본다거나 색을 좀 더 많이 써본다거나 선으로 대상을 설명하는 것을 최소화해보는 등 제 나름의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나오게 된 변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변함없이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요, 주제를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대학시절 배낭여행을 다니며 여행의 경험을 낙서나 가벼운 스케치로 남기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림으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막 익숙해져 갔던 때는 대학원에 가기 위해 런던에서 살았던 시절이였는데요, 아무래도 런던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여행’이라는 주제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틈틈이 여행을 다녔는데요, 어느 순간 여행의 풍경들 중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특별한 여행의 순간을 위해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 장시간의 비행을 견뎌내고 피곤에 지쳐 녹초가 된 상태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시내로 이동하는 사람들, 그것의 보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나 미술관, 유적지를 찾아 각자의 저장장치로 셔터를 누르기에 정신없는 사람들, 특별한 음식을 찾고 무엇을 꼭 사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이 재미있었어요. 그것이 때로는 아름답기도 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기도 하며 절실해 보이기도 해요. 여행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평소의 삶과 다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를 지켜보면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 같은 것이 보였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사는 삶의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업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일이잖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채우세요?
네. 결국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 자신과 관련된 세계를 드러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스스로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 등을 알아가며 내 가족,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동네, 이 도시를 잘 관찰하며 내 주변에 것들의 리얼리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내 주변의 것들 보다는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해왔고 부족한 것들은 새로운 여행을 통해 채우려 했던것 같아요. 요즘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 있습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볼 때, 노준구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의 경계에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의를 내려보면, ‘글의 내용을 보완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글속에 삽입되는 삽화풍의 그림’인데, 작가님의 작업은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한 완성도와 네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어요. 앞으로의 포지셔닝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좋은 일러스트레이션일까?’, 혹은 ‘내 일러스트레이션이 산업적인 기능에서 보자면 얼마나 유용할까?’라는 물음이 항상 제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저도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의 차이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는데요, 정확한 답을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항상 매체와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그림 자체가 목적인 제 개인작업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거나 상당히 쓸모없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십년 넘게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요즘 갖게 되는 생각은 내 일러스트레이션의 확장성 같은 것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니까 어떤것 까지만 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시도 할 수 있는 영역을 넓게 바라보고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이번 전시에서 작업한 그림들은 일러스트레이터니까 할 수 있는 그림 자체가 목적인 또 하나의 매체라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작업을 위해 어떻게 이미지를 수집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가공하고 또 화면 위에 어떻게 풀어 놓는지도 궁금합니다. 작업과정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의 작업과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그림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작업만을 위해서 떠난 여행도 있었고 여름휴가로 떠난 휴양지에서도 여행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그때 스케치를 해두며 구상을 할 때도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카메라에 장면들을 담아 그림을 구상할 때 참고자료로 쓰기도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스케치북을 보며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 장면들은 새로운 형태로의 변형을 하거나 재구성을 통해 제 나름의 색과 선을 써가며 화면을 채워나갑니다. 제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이 때로는 아름답지 않을 때도 있는데요 완성된 화면을 볼 때 뿌듯한 기분이 찾아오길 바라며 그 과정을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에게 영향을 준 작가 혹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나요?
대학시절 배낭여행 중 우연히 헬싱키의 한 미술관에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요 그 중 Johann Fischer의 드로잉을 보며 가슴이 오랫동안 뛰었던 기억이 있어요. 브뤼헐,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을 좋아하고 고대 이집트미술, 초기 기독교 미술이나 러시아의 성상화, 인도 무굴제국의 회화 등에 매료된 적도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거나 자극을 받을 때에 조형 자체보다는 그림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와 같은 부분들에 더 영향을 많이 받으려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가깝게 지내는 친구 중 회화를 하는 작가가 있는데요, 그 친구의 작업을 보면서 일상에서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과 풍경을 보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익숙한 풍경도 잘 바라보는 것이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 주변에 자기세계가 뚜렷한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많은데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며 새로운 활력을 얻기도 합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긍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작가에게서, 혹은 비지니스를 잘 하고 있는 작가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을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요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이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에요. 어떤 환경이 있는 곳에서, 어떤 집에서, 어떤 방식의 작업을 하고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가족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창작한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과 또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림이라는 형태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한 장면들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조금씩 창작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전달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08 런던 킹스턴대학교 MA Llustration & Animation 디스팅션 어워드 졸업 2006 홍익대학교 BFA 광고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