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각가 임명옥의 일관된 관심이자 주제는 빛 또는 조명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빛을 발하는 발광체나 발광물질을 사용하여 자신이 학습한 정통 덩어리 조각이나 기하학 미니멀리즘 정서를 벗어나려는 의도로 파악되는데, 이러한 관점은 1996년 이후 전통 조각적 재료들인 철판, 돌, 나무들의 물질적 본성이나 조형 형태를 변형시키려는 일련의 작업에서
예시된다.
1996년 이후 작가는 철제나 대리석을 연마하여 거울 같은 광택을 내거나,
나무기둥이나 침목에 네온을 부착시키고 철판 표면을 수직으로 자른 틈새에 조명 빛을 넣어 재료의 물질성과 무게감을 덜어내고 무기체 조각에
생명체적 활력을 부여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투명유리나 채색유리를 사용하여 재료의 탈물질 효과를
극대화하는 유리 조각을 병행시키고 있다.
“빛으로 정화되는 장소”라는 뜻에서 라는 제목으로 전술한 조각, 설치
작업을 발표해온 임명옥은 이번 근작전에서 라는 제하에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두 그룹의 신작 시리즈를 발표한다.
2. 첫 번째 그룹은 벽면을 장식한 장방형의 철판 조명 작업이다. 작가는
프레임에 해당되는 가장자리를 제외한 철판 중앙부 전체를 다수의 반복적 수직선으로 커팅(레이저 컴퓨터
커팅)한 후 뒤로부터 앞으로 구부리는 벤딩 수법으로 선과 선 사이의 틈을 만들고 그 사이로 후면에 장착된 LED 조명 빛이 흘러나오게 하였다. 이전에 사용하던 네온 대신에
이제는 LED를 "심어" 조명 빛의 미학적 효과를 증폭시킨 것이다. 그것은 팔레트에서
색을 혼합하듯이 적색, 녹색, 청색의 전구를 적절히 배합하여
다채로운 색광의 스펙트럼을 만들 수 있는 LED 작업으로 가능하였다.
작가는 이 색광의 스펙트럼을 적당한 시차를 두고 변화하도록
디지털로 프로그램화하여 키네틱한 조명예술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철판 표면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은 은은하게 노을 지는 지평선 혹은 수평선을 연상시키거나, 때로는 화려한 조명 빛으로 깜박이는 한밤의
도시풍경을 환기시킨다. 흐르는 빛의 효과가 강인한 철판의 물성을 일탈시키며 강철을 마치 고무줄과 같은
탄력성의 재료로 오인시키는 순간, 철판은 생명적 활력을 부여받으며 유기체 대상으로 전환된다.
두 번째 그룹은 여러 개의 판유리를 겹으로 붙이거나 채색된
통유리를 사용하여 만든 빛의 오브제인데, 미니어쳐 하우스 모형 같기도 하고 잘 다듬어진 대형 보석 같기도
하다. 이는 축소지향의 미니멀리즘과 확대지향의 맥시멀리즘을 동시에 함의하는 양면가치 미학을 표출한다. 이것은 물질성이 최소화된 투명 유리를 매체로 사용하여 빛의 미학이라는 자신의 예술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3. 임명옥의 작업은 빛과 색, 비/탈 물질성과 투명성을 매개로 시각적, 미학적 하모니를 창출하며 작품, 공간, 관객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철판의 LED 조명과 유리 작품은 빛과 색, 투명성과 반사성의 매커니즘으로 통상 조각의 시각적 통일성을 교란시키는 동시에 주위 공간을 활성화시킨다. 작품 고유의 자족성 보다는 그것이 놓이는 공간과의 관계성이 강조되며, 공간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관객 역시 일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재래 입장을 벗어나 작품과 공간적ㆍ환경적으로 교류,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지각하게 된다.
빛과 색의 유희가 일궈내는 새로운 공간 환경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작품이 놓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그 공간속에서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환영을 부여받는다. 동시에
시간의 간격을 두고 변하는 빛의 흐름으로 시간성을 인식하며 자신이 작품과 시공적으로 교류하는 가상의 경험을 맛보게 된다. 작품과의 인터랙티비티를 통해 작품에 개입하는 현상학적 경험이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시작하여 설치, 퍼포먼스로 계승되는 지금/여기의 현장미학을 뒷받침한다.
이런 맥락에서 임명옥의 작업은 모던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한
탈미니멀리즘 설치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설치작업에서 관객은 작품과의 상호주관적 소통관계로 야기되는
주체와 객체간의 영속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작품을 실제 공간과 실제 시간 속에
위치시키려는 관객의 인식론적 노력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요컨대 빛을 소재화, 주제화하는 임명옥의 작업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로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현장성이 빛으로 요약되는 그녀의 작품세계에 특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요인이자 요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