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Apr, 2010 - 21 May, 2010
Ⅰ. 최석운은
왜 일상에 주목하는가?
최석운은 자신의 일상을 그린다. 세상에 존재한 이후 단 한 번도 조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둡고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조차 그의 세상을 지탱하는 굳건한 요소로 살아난다. 정치 사회 역사 변혁 등의 젊은이의 피를 끓게 하는 거대 담론보다 평범한 일상의 풍속과 자전적인 작은 이야기를 고집해온 그의 작품들이 지닌 매력은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통한 자아의 반성이다. 주변의 비근한 일화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의 삶이 짙게 배어있다.
Ⅱ. 의인화된 사물들의 빗나간 눈빛
항아리에 올라가 있는 돼지들은 사랑스러움으로 충분히 존재증명을 하고
있다. 돼지가 사람을 ‘당신 그러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바라본다든지,
개가 ‘그대들 인간이여, 생각은 좀 하고 사시오?’
하는 식으로 바라본다. 한 마디로 웃기는 것들이다. 한 마디
더 하자면 그런 시선을 받고 있는 우리도 웃기는 존재들이다. 그런가 하면 바위에 기대어 골똘한 상념에
빠져 있는 개에게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세상에, 골똘히
생각하는 개가 다 있다! 그러고 보면 개가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알 수 없다. 입체 <돼지가 나를 본다>의
돼지는 또 어떤가. 전시회에 온 사람들은 저금통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돼지는 코 묻은 동전 따위에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인간을 관찰하는 ‘인간적인, 인간화된’ 돼지이다.
Ⅲ. 혹은 소외된 인간들을 향한 휴머니티적 시선
그가 그리는, 소소하고 하찮을 뿐만 아니라 어둡기까지 한 일상의 모습들은 대부분 서민들의 것이다. 하찮은 일상 속에서 애처럽고 처량한 서민의 일상을 절묘한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혐오스러움이 즐거움으로, 그리고 악몽과 괴로움이 해학으로 변모하는 지점을 찾아내어 우리가 흔히들 언급하는 블랙 코메디, 풍자와 같은 단어들로 이끌어낸다.
<해변의 여인>,
<해변의 피카소>, <해변의 모나리자>
등 이른바 ‘해변 시리즈’의 인물들은 해변에서의 관음증적 시선이나 노출증적인 현시욕에서 해방된 존재들인 동시에 피카소와 모나리자는
절대성의 주술에서 풀려나와 인간성을 회복했다. 담벼락 아래에서 입을 맞추는 남녀(<어떤 풍경>), 무슨 엄청난 사안이 걸린 비밀통화라도
하는 듯이 바빠 보이는 사람들(<나는 잘 있다>), 누가
누구를 따라가는지, 애인 관계인지, 부부관계인지, 아무 관계도 아닌 건지 모를 수상한 동네 아저씨․아줌마의 조우(<조깅>)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그림들은 언제나, 지극히, 너무나 인간적이다. 세상에 존재한 이후 단 한 번도 조명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둡고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조차 그의 세상을 지탱하는 굳건한 요소로 살아난다. 일상에서의
작은 평화,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이웃이 주는 친밀성(<죽
파는 여자>)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것이 바로 작가의 특유한 시선이다. 그게 평범한 우리가 평범함의 연대로 ‘다 잘 있다’는 전언이라도 되는 양 공감하게 하고 그 작품들 앞에 한참을
머물게 만든다.
Ⅳ. 가벼운
이미지 속에서 무거운 주제를 버무려 내는 최석운의 회화
최석운의 회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에 다름 아니다. 풍자와 유머 그리고 뼈있는 농담으로 가득한 현실 풍자 소설이되 그것이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그림’으로 표출된 그림동화이기 때문이다. 어이없거나
낙담스러운 현실의 상황들을 그저 담담히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각과 그것을 말하는 어린이의 미성숙한 화법, 즉
어눌하고 고졸한 방식의 표현이 관통한다. 아이의 시선을 빌어 우리 일상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통렬한
비판의식을 담는다. 그런 탓에 그의 회화는 순수함과 따뜻한 유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뼈있는 농담과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한 비수 같은 풍자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의 회화를 보면서 환하게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려오거나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고단한 현실에 대한 반추이기도 하다. 삶의 내러티브를 비유, 상징, 의인화, 우화의 어법으로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쪼개고 다시 재생산하면서 그 속에 웃음과 슬픔을 함께 몰아넣는 최석운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그림들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을 하였다. 1990년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9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위트와 유머,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림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