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Jul, 2011 - 28 Aug, 2011
정국택은 ‘사람’을 만든다. Ctrl+C+V 키를 눌러 무한 반복으로 생성된 것 마냥 동일한 인물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공통적으로 원통형의 머리와 몸, 반구형의 무릎과 엉덩이, 목에는 날리는 넥타이와 손에 든 묵직한 서류가방으로 표현되어있다. 개성을 지닌 인물이라기보다 익명화된 현대인을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라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은 얼굴 표정대신 다양한 몸짓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재료의 상징성으로 현대인의 인공적인 현실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II. 역동적인 움직임을 주목하라.
정국택의 작품에서 인물상을 고정시키고 있는 받침대는 구형, 원추형, 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로 그 자체가 인물과 더불어 작품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자체에서 드러나는 움직임은 인물상들의 동적인 포즈들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균형감각과 경쾌한 운동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넥타이를 휘날리며 가방을
들고 달려가는 현대의 평범한 샐러리맨 같은 인물 형상이 뾰족한 원추나 둥글게 휜 받침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움직이는 정국택의 조각은 꿈과 현실, 서글픔과
자그마한 행복의 경계를 오가며 오뚝이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여기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의 물질성과 단순 명쾌한 내용을 조화시킨 구상 조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III. 따뜻하면서도, 풍자적인 스토리를 버무려내는 이야기꾼
작가의 탄탄한 구성력, 재료를 다루는 깔끔한 조형력의 스킬, 즉 손의 기능으로 유발되는 '기술적 재능'과 더불어 작품을 이끌어 가는 '풍자와 위트'의 솜씨는 특히 돋보이는 특징이다. 곡면 위의 두 명 혹은 네 명의 뜀박질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경쟁해야 할 타인
이기도 하는 이중의 알레고리를 통해 각박한 현대인의 심성을 풍자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포즈를 통해 작가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이해 보려는 위트를 보여준다.
그가 발언을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작업에는 발언의 수위가 형상에 넘쳐나던 80년대의 이야기체 조각의 스타일을 눈에 띄게 유지하고 있다. 계도적이지 않음에도 이렇게 인식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시 짓기 보다는 소설 쓰기의 형태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간직하고 연출적, 연극적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조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형상에 저마다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이고 뜀박질을 하고 있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본능적 욕구가 그들을 뛰게 하는 것 이리라.
Ⅳ. 마주해보는 자신의 모습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 그 가운데에서 삶의 동료들과 어쩔 도리 없이 벌여야 하는 무한 경쟁... 신나는 여흥과 놀이의 문화마저 고달픈 비즈니스 의 연장으로 이어져야 하는 삭막하고도 곤핍한 시대... 그 시대를 호흡하는 고단한 현대인의 세상살이가 그의 작업에는 소설의 삽화처럼 선명히 들어서 있다. 이야기 구조를 간직한 대상의 내러티브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용이함을 제공한다. 이것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 관람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상'이라고 하는 비교적 관객에게 쉬운 조형어법의 출발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조각이 이성의 조각을 추구하기보다는 연극적으로 잘 꾸며내는 상황의 조각(sculpture of situation)이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정국택 개인전
1997년 인하대학교 미술교육(조소전공)을, 성신대학원에서 환경조각과를 졸업하였다. 조형갤러리,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크라운해태 아트밸리 스튜디오,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입주작가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