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Nov, 2012 - 27 Jan, 2013
I. 흔히 생각하는 시간의 규칙성, 정확성에 반대되는 시간의 불연속성과 추상성에 대한 고찰
우리는 흔히
시간을 과거-현재-미래에 이르는 직선운동을 한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시간에는 반복이 성립할 공간이 없고, 더불어 공간과 분리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할 때, 기억의
세계를 실재로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어슴푸레 떠오르는, 만질
수 없고, 소유할 수도 없는 부서지기 쉽고 금방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과학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시간은 기억 속에서 추상적인 것이 된다.
정혜련의 작업은
이런 ‘추상적인 시간’ 시간의 속성을 잘 건드리고 있다. 그는 입체를 통해 표현한 시간에서 공간을 배제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현존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있는 시간을 재현하고 있으므로 ‘추상적인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추상적 시간을 시각화 하기 위해 그는 작품
속에 ‘운동’을 도입하고 있다. 정혜련의 작품 속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돌고
있는 선들의 운동일 뿐이다. 그가 그려놓은 선들이 회전운동을 하면서 원심을 향해 수렴되는 블랙홀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중심은 시공간을 빨아들여 삼키는 구멍이 존재한다.
II. 전작에서의 시각적 유희형태만을 취해 시각예술자체의 근원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에 대한 탐구
정혜련의
그의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딱딱한 성질의 자작나무를 오랜 시간 동안 물에 적시고 변형시켜 구부러지는
선의 형태를 만든다. 이 부분은 LED와 합쳐져 세련되고
풍부한 감각을 내뿜는 모듈이 되어 전시공간상황에 따라 나사로 롤러코스트 유선 형태와도 같은 자유자재의 형태로 조립된다. 나무 뒷면에 붙인 네온과 함께 바닥과 천장에는 형태가 만들어낸 드로잉 그림자가 생성되고 진짜와 허상공간이 서로
접속되면서 입체적인 몽타주가 탄생된다.
그의 작품들은
마구 뒤엉킨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고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킨 것 같지만,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구조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복잡성 속에 단순한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 맞은 편 면에 조명을 부착한 것도 우리의 눈이 이러한 자유로운 흐름을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장치인지 모른다.
III. 이질적인 재료들의 해체와 재조합을 거친 낯선 문맥의 작업의 탄생
정혜련은 나무, 가죽, LED, 쇠, 전기, 바람
등의 속성이 다른 질료가 갖는 형태의 본질을 조금씩 변형시켜 이질적인 산물의 편차를 둔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바닥과 벽면에 그림자로 드로잉 된 형태는 우연을 만들어내는 요소인 빛, 바람의 파동이란
비 물질이 지속적으로 침투하여 한 순간의 시공간도 고정되지 않게 교란시킨다. 조각이 신체와 이를 둘러싼
공간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오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정혜련의 작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 안에 있는 이 시대 인간들의 복잡성을
은유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 시대의
자연, 기계,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는 개별신체의 경험을 시각화시키고자
한다. 나무(자연)와
LED(문명)의 질료는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서로간이 일체가 되어 물리적 변형 안에서 우연조차 조절하면서 새로운 감각들을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배치된
서로 다른 감각들이 생성해 내는 구조전체는 규정되어지지 않은 비정형적인 형태의 촉각적이고 시지각적인 감각과 함께 우주근원의 빅뱅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에 따른 존재에 대한 질문을 압축해서 던지고 있다.
*참고자료: 경험적 한계의 공간 < Abstract Time>, 김미진(홍익대학원 교수 , 기획&비평)
부산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김종영미술관(2012), OCI미술관 (2011), 성곡미술관(2005) 등 총12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다수의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하였으며, 김종영 미술관 올해의 젊은 조각가,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선정,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