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Jul, 2014 - 29 Aug, 2014
갤러리 로얄은 7. 17 – 8. 29까지 임영선의 개인전 ‘On the Earth’를 개최합니다. 작가는 자원봉사를 위해 처음 제 3세계의 아이들과 대면한 기억을 시발점으로, 관광객이 아닌 함께 숨쉬고 살아가며 관찰자로서의 기억을 더듬어 화폭에 담아냅니다. 한류라는 ‘돈’이 되는 매체로 10대의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 한국이 과연 긍정적인 미래를 초래할 수 있는지, 또 그 문화가 아직 서구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에서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을 통해 풀어내고자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고찰을 해온 작가는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동아시아’라는 더 큰 범주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분단국가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해 ‘동아시아’의 문제라는 인식을 구축하기 위해 작가는 제 3세계의 아이들을 그림으로서 공동의 미래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고자 한다.합니다. 더불어 시대정신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는 임영선 작가는 한 개인의 예술가가 우리의 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빛나는 미소를 찾아서 임영선이 그리는 아이들
이나바(후지무라) 마이 광운대학교 조교수
임영선 작가의 작품 앞에 섰을 때 그 뛰어난 묘사력과 거대한 화면을 메운 치밀한 점묘에 먼저 압도되었다. 동시에 현대미술은 항상 새로운 표현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통념과 상관 없는 듯 우직하게 사실적인 그림을 계속 그리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나 진지하고 맑기 때문에 그림 앞에 서 있는 자기자신의 존재가 몹시 왜소한 것으로 느껴지고 두려움이 일어난 정도였다. 정면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늠름하고 투명한 눈동자가 마치 나의 부족함을 간파 한 것 같은 약간 불편한 느낌 마저 들었던 것이다.
임영선 작품은 난해함과는 무관하다. 작가 본인이 강조하듯이 매우 단순하다. 그 단순함은 보는 사람에게 보통 사실화에 없는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치밀하게 점묘된 색점이 빛 입자의 파도가 되어 화면에서 넘쳐 나 그림 앞에 선 우리를 둘러싸 버린다. 이 압도적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영선 작품은 난해함과는 무관하다. 작가 본인이 강조하듯이 매우 단순하다. 그 단순함은 보는 사람에게 보통 사실화에 없는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치밀하게 점묘된 색점이 빛 입자의 파도가 되어 화면에서 넘쳐 나 그림 앞에 선 우리를 둘러싸 버린다. 이 압도적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영선은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지만 리얼리즘 회화, 특히 인물화를 그리고 싶어 해서 한중 국교가 수립된 이듬해인 1993년에 베이징으로 건너 가서 중앙미술학원 대학원에서 판화를 배웠다. 유학 시절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한 그는 거기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방불케 하는 소박한 아이들을 만났다. 이만남이 그녀의 작품의 주제 인 '아시아' 그리고 '아이들'로 이어져 갔다.
중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수년간 보냈던 임영선이었는데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고향인 부산에서 병간호와 일을 양립시키는 것에 부심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고민한 결과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선택한 것이 2007년이었다. 화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해보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포기한다고 결심한 그는 과감하게 큰 캔버스를 구하고 유학 시절에 사생 여행으로 방문한 중국 남부 지역에 위치한 구이저우(貴州) 아이들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이 무렵의 작품을 보면 물감과 명암 기법은 서양화의 그것을 이용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얇게 칠하여 마치 산수화와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100호~300호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아이들의 몸은 모두 반투명하고 윤곽이 희미해지며 그들이 사는 마을의 풍경 속에 녹아있다. 임영선의 작품은 아이들을 둘러싼 상황과 현실을 아이들 몸 속에 콜라주처럼 그림으로써 기록화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투명한 몸은 육체의 허무함과 영혼의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오랜 세월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고 있는 그에게 영원한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창작의 기둥이자 창조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캄보디아의 난민 캠프를 방문한 뒤 아이들을 핵심적인 주제로 그리는 것을 결심한 임영선은 그 이후 아시아 각지를 순례해 나간다. 그가 방문한 곳은 어디나 가난한 지역이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밝은 웃음과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 임영선이 만난 그들, 즉 '위대한 존재인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이다. 작가는 아이들을 큰 화면에 그려 냄으로써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품는 동정이나 연민을 버리게 만들고 아이들이 작가 자신에게 준 강렬한 임팩트와 감동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로 몽골 소년들을 그린 작품이 있다. 임영선은 이 작품에서 '마지막 유목민'의 모습을 그렸다. 황사 때문에 초원이 점차 사라지고 유목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그들은 울란바토르 등 도시 주변에 흩어져있는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몽골 말에 당당히 올라타고 있는 소년들 뒤에 펼쳐지는 빈민가 풍경은 그들을 둘러싼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임영선 작가는 자긍심이 강한 유목민으로서의 그들을 '멋지게 그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그려 냈다.
또한 그녀의 작업에 한 전환점을 가져온 것이 티벳이다. 마음 속에 숨긴 고민과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방문한 티벳. 거기서 그는 해발 5500 미터의 어려운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임영선은 그들이야말로 그때까지 만난 어느 아이들보다도 무욕하고 순수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감동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이 점묘 기법이었다. 고산 지대의 강렬한 태양 광선이나 심한 온도차이에 의해 거친 아이들의 피부와 머리카락에 반사되는 빛의 강함을 붓 터치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벳 아이들에 대해 말할 때 임영선은 그들을 존경하듯이 '부처님과 같은 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존재이며 그들의 눈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언젠가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볼지도 모르니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깊은 동경심을 가지고 붓 끝으로 한점 한점 점을 찍는 임영선의 작업은 바로 불화와 만다라를 그리는 불사(佛事)와 똑같고 기도 그 자체이다. 그에 있어서 그리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고 명상이며,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행위이기도 한다.
임영선의 그림 속의 아이들은 문명과 야만 분쟁과평화 자본과 비자본의 경계에 서 있다. 그들은 정치와 경제,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세계화 흐름 속에서 부와 빈곤의 세계적인 격차는 점점 넓어지고 거기서 가장 큰 희생을 받고 있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이고 소수자이며 아이들이다. 현재 세계는 시대가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각지에서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뉴스나 SNS를 통해 매일 끔찍한 싸움의 희생자가 된 아이들의 모습이 보도되고 있다. 그래도 임영선은 비참한 사실을 그대로 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낙관주의자라고 하고 어두운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다고 단언한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그는 당시 민중미술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민중미술에 흔히 볼 수 있는 비참한 현실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정치성이 강한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모습을 어디까지나 부드럽게 그리고 그들의 밝은 미소가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바라고 있다. 임영선은 그것이 회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작품 또한 민중미술의 계보 속에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의 '민중미술'을 80년대 고조된 민중미술운동은 물론, 80년대의 미술운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표현을 계속 모색하는 현실주의적, 참여적, 저항적 미술의 종합 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예를 들어 티벳 소년의 눈 속에 민중을 탄압하는 중국 군인의 모습을 그려 넣은 임영선의 작품은 분명 새로운 민중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굳이 민중미술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민중미술은 한 시대의 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양한 발전을 계속하는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동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임영선의 작업은 그 계보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임영선에게 그가 그리는 아이들은 결코 타인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도서관에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났던 네팔 소녀의 눈동자 속에는 아기를 업고 미소 짓는 소녀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그 소녀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땅에 두 다리를 버티고 힘차게 사는 사람의 모습이고, 임영선의 딸이자 동지이며,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아프리카나 남미의 아이들도 그리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의 빛나는 미소를 찾는 임영선은 이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세계의 미래와 희망, 그리고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업으로 계속할 것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으로 유학하여 중앙 미술학원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유학 시절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주요 작품 소재이자 주제인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이후 작업은 ‘아시아’에서 ‘아이들’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