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Oct, 2023 - 09 Dec, 2023
《사이···間》
2023. 10. 19 - 12. 09
정재은
갤러리로얄
'사이···間'_정재은
완연한 가을을 맞이하여 갤러리 로얄은 작가 정재은의 개인전 «사이···間»을 10월 19일부터 12월 9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활발히 작업해 오고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우리 선조들이 그렸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와 책가도(冊架圖)를 작가 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단정한 색감이 지배적인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조선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대표적인 두 그림의 전통과 형식을 보존하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의 기교와 기법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과 확장을 모색하고자 한다.
정재은은 학부시절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7년 전 한국화 종이(순지 또는 옻지)와 분채 물감에 매료되어 현재는 한국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작가는 결혼 후 오랜 기간 남편을 따라 동서양을 오고 가며 거처를 옮겼고, 작가이지만 집에서는 아내 또는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이 모든 것이 ‘경계’ 또는 ‘사이’에 있었다. 현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거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정체감을 작업 과정에 끌어들이고 기존의 전통 회화를 답습하면서도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동서양의 미감이 공존하는 작업 양식을 보여준다. 정재은에게 한국화는 무한히 참조가 가능한 흥미로운 원천이다. 여러 회화를 접하며 작가 자신의 작업 방법론을 만들어 가지만 한국화만의 온건함과 평안함은 잃지 않는다. 작가는 무의식 속에서 즉흥적으로 조색을 하며 그 동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적 색조를 창조해 낸다. 서양의 두터운 물감과 달리 동양의 분채, 봉채는 화면의 바탕 내면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시간의 흔적이 담기고 여운을 자아낸다. 옻지 위 우연성에서 탄생한 색들을 시간을 두고 다듬고 수 십 번 겹쳐내며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탄생시킨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권위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작가만의 색으로 다채롭게 변주한다. 해, 달, 물, 소나무, 다섯 봉우리의 산으로 구성된 각각의 요소들이 한 화면에 좌우 대칭적 구조로 배치되고 해와 달이 동시에 존재하여 음양의 공존에서 나타나는 다층적 구조는 그저 즉물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닌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지닌다. 작가는 화폭 위의 요소와 구도를 보존하면서도 작가만의 색채와 기법으로 계승한다.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직설적인 색을 사용해 대비에서 오는 선명함의 효과에 집중되었던 과거의 전통적 화법과는 달리 담백하고 절제된 색감이 돋보인다. 다양한 색이 번지 듯 중첩되어 보이는 바탕은 서로 다른 안료의 색들을 앞 뒤로 여러 차례 겹침으로써 우연적 효과로 인해 무한한 깊이 감의 여백으로 만들어진다. 화폭 속 요소들의 테두리를 감싸는 또 다른 물성의 금분, 은분 선들은 빛의 반사로 매트한 화면에 생동하게 화사함을 더한다.
조선 후기 궁중과 양반가를 넘어 서민들에게까지 유행했던 책의 정물화인 책가도는, 기본적 도상의 반복적 사용으로 자리 잡은 책들은 과거의 평범했던 백성들의 많은 일상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과거 책벌레였던 정조가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책가도를 세워놓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던 그림이다. 정재은의 모노톤 책가도는 조형적 모던함이 나타난다. 간결하고 평면적이지만 역원근적 구도가 흥미롭다. 옻지에 분채가 은은하게 번져 나와 겹겹이 쌓인 맑은 물성의 채색들이 화폭 위에 아름답게 중첩되고, 정결스럽게 반복되어 나열된 수직 수평의 직선적 패턴은 서양의 미니멀리즘을 닮았지만 장식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통 문양의 정교함이 보여주는 동양적 미는 동서양의 조화를 이뤄 한국화의 다양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번 전시 «사이···間»을 통해 정재은은 기존의 한국화의 전통적 변주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의 소망이 아닌 현대인의 소망을 담은 한국화의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을 전하고자 한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작가의 삶과 작가 내면을 사유하는 과정 속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 «사이···間»은 작가의 그 동안의 삶의 많은 사이 간의 여러 접점들을 아름다운 회화로 들려줄 것이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며 내면에 떠오르는 조선의 풍경과 현재의 풍경을 한 자리에서 공존시키며 각자에게 형성되는 또 다른 서사를 자유롭게 상상하며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갤러리로얄 김경현 큐레이터